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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상처, 대물림 막는 법 (세대간 전이, 상쇄 모델, 보호 요인)

바이슈디 2026. 7. 26. 16:01

목차


    저는 처음부터 아버지와는 다른 부모가 될 거라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느 순간 제 입에서 어린 시절 들었던 아버지의 말투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 부모에게 받은 영향이 얼마나 깊게 남아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의식적으로 선택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는 바꿀 수 없지만, 오늘의 선택으로 다음 세대를 바꿀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가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저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잘못을 했을 때 따뜻한 설명보다 비난이 먼저였고,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생각보다 ‘나는 왜 인정받지 못할까’라는 마음이 더 크게 남았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어른이 된 후에도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참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화가 나도 괜찮은 척하고, 힘들어도 혼자 견디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부모의 경험과 행동 방식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세대 간 전이(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라고 합니다. 이는 부모가 가진 감정 표현 방식, 갈등 해결 방법, 관계 패턴 등이 자녀에게 학습되어 이어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와 관련해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의 보보 인형 실험은 관찰 학습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성인의 행동을 관찰한 뒤 그 행동 방식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를 모델링(Modeling)​이라고 하며, 아이는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을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자신의 행동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또한 어린 시절 반복적인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되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신체 시스템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코르티솔(Cortisol)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데,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감정 조절과 스트레스 반응 체계의 균형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버티던 저의 모습도, 어쩌면 그런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었는지 모릅니다. 결국 부모의 말과 행동은 아이에게 단순한 기억으로 남지 않습니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익힙니다.

    • 모델링: 부모의 행동과 감정 표현 방식을 관찰하고 학습하는 과정
    • 세대 간 전이: 부모 세대의 감정·행동 패턴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
    • 만성 스트레스의 영향: 반복된 스트레스 경험이 감정 조절과 스트레스 반응 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음
    요약: 부모의 말과 행동은 모델링을 통해 아이의 행동과 감정 표현 방식에 영향을 주며, 반복된 스트레스 경험은 아이의 감정 조절 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왜 어떤 사람은 부모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가: 상쇄 모델의 작동 원리

    제가 부모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작은 다짐이었습니다. “아이가 실수했을 때 먼저 물어보자. 비난하지 말고 이해하자.” 어쩌면 거창하지 않은 다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의식적인 선택이 세대 간 전이를 끊는 중요한 시작이 됩니다.

     

    프랑스 심리학자 자크 르콩트(Jacques Lecomte)는 부모에게서 받은 부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의식적으로 다른 행동을 선택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이를 상쇄 모델(Counter Model)​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했습니다. 상쇄 모델이란 부모의 행동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그것을 기준 삼아 의식적으로 반대 방향의 선택을 하는 전략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심리학자 에미 베르너(Emmy Werner)와 루스 스미스(Ruth Smith)는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태어난 신생아 약 700명을 대상으로 약 40년간 추적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카우아이섬은 극심한 빈곤, 알코올 중독, 높은 범죄율 등 여러 위험 요인이 존재하는 환경이었습니다.

     

    예상대로 많은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약 30%의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성인이 된 후 안정적인 삶을 유지했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겪을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출처: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Werner & Smith 연구).

    이들을 다른 길로 이끈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어른의 존재였습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부모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이웃 어른, 학교 선생님, 스포츠 코치처럼 혈연과 관계없이 아이에게 안정적인 관계를 제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관계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환경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부모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런 어른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책과 심리 상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 빈자리를 채워갔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세대 간 전이를 끊는 것은 과거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받은 영향을 알아차리고,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요약: 상쇄 모델과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존재는 세대 간 전이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보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것들:  보호 요인을 만드는 방법

    아이를 키우면서 제가 가장 먼저 바꾸려고 노력한 것은 말 한마디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가 실수했을 때 “왜 이렇게 했어?”라는 말이 먼저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멈추고 “어떻게 된 거야?”라고 먼저 묻습니다.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아이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방어적으로 움츠러들기보다 눈을 마주치며 자신의 생각을 설명합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 방향이 맞다’는 확신을 다시 한번 갖게 됩니다.

    독일의 커리어 코치 마르틴 베를레(Martin Wehrle)는 변화를 시작하는 실용적인 방법으로 2분 법칙을 소개했습니다. 2분 법칙이란 완벽한 준비나 강한 의지를 기다리기보다, 아주 작은 행동을 먼저 시작하면 동기가 따라올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쉽게 말해 의욕이 생겨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시작하면서 의욕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아이에게 오늘 칭찬 한마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보다, 지금 바로 “아까 정말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것이 더 큰 변화를 만듭니다. 작은 행동 하나가 관계의 방향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framing)​이라고 합니다. 인지적 재구성이란 과거의 경험을 단순한 상처나 피해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었는지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억압적인 태도가 분명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경험을 통해 어떤 말이 사람을 위축시키는지, 어떤 태도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지금 아이를 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어린 시절의 아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경험은 제가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연구에서는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경험을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긍정적인 적응과 심리적 안정성을 보이는 경향이 보고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상처가 쉽게 극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은 현재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완벽한 환경이나 특별한 사람이 있어야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아이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그리고 내가 선택하는 작은 행동이 보호 요인(Protective Factor)을 만들어 갑니다. 보호 요인이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심리적·사회적 완충 요소를 의미합니다.

    • 실수한 아이에게 비난보다 “어떻게 된 거야?”라고 먼저 묻기
    • 2분 법칙: 완벽한 준비보다 지금 당장 작은 행동 하나 시작하기
    • 인지적 재구성: 과거의 아픔을 “나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로 다시 바라보기
    • 칭찬은 단순한 기분 좋은 말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을 믿는 힘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기
    요약: 결국 변화를 만드는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닙니다. 오늘 아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과거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작은 노력에서 변화는 시작됩니다.

    나의 생각

    저는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바라는 목표도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가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를 아이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입니다. 세대 간 전이는 강력하게 이어질 수 있지만, 그 흐름이 반드시 반복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받은 영향을 알아차리고, 상쇄 모델과 인지적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선택을 한다면 충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거창한 노력보다 아이에게 건네는 작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됩니다. 어린 시절의 아픔은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리고 오늘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될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두 마리 늑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긍정과 부정, 사랑과 두려움이라는 두 가지 힘이 존재하고, 결국 더 많이 먹이를 준 쪽이 자란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과거의 상처보다 사랑과 이해에 더 많은 먹이를 주고 싶습니다.

     

    오늘 아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그 작은 선택이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sjdK2fSSy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