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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동안 제가 어느 쪽인지 몰라서 꽤 불편했습니다.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나가는데, 그렇다고 모임의 중심에 서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향인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하고, 외향인이라고 하기엔 더 어색한 그 어중간한 느낌. 그게 사실은 '어중간한 것'이 아니라 제3의 유형, 즉 이양인(오트로버트)에 해당한다는 걸 알게 된 건 꽤 최근의 일입니다.

이양인 특징_내향도 외향도 아닌 제3의 유형
심리학에서는 오랫동안 사람의 성격을 내향성(introversion)과 외향성(extroversion)이라는 두 축으로 분류해 왔습니다. 여기서 내향성이란 혼자 있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내면의 자극을 선호하는 기질을, 외향성이란 외부 자극과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활력을 얻는 기질을 말합니다.
그런데 인지심리학 연구들은 전체 인구의 약 20~30%가량이 이 두 범주 어디에도 명확하게 속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바로 이 그룹을 이양인, 영어로는 오트로버트(outrovert)라고 부릅니다. 오트로버트란 인트로버트(내향인)도 엑스트로버트(외향인)도 아닌, 역할 기반의 범주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유형을 의미합니다.
제가 직접 이양인 테스트를 해봤을 때 기준 점수인 188점 정확히 경계선에 위치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중간 어딘가겠거니 했는데, 문항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아, 이게 나였구나"라는 감각이 제법 강하게 왔습니다. 학과 행사는 빠짐없이 가면서도 학생회장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그 심리가 정확히 설명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양인에게 중요한 건 특성이 아니라 역할입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의무감 있게 하지만, 그 역할을 굳이 자처하거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욕구는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역할에서 벗어난 시간에 자기 성장과 내면화를 통해 에너지를 채웁니다. 이게 게으름이나 비겁함이 아니라 이양인의 고유한 기질이라는 점이 제게는 꽤 큰 위로였습니다.
- 모임에는 참석하지만 모임의 리더 역할을 자처하지 않는다
-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을 지나치게 갈망하지 않는다
-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 능력이 높다
- 이분법적 선택을 요구받을 때 가장 불편함을 느낀다
- 혼자 있는 시간에 오히려 세상의 중심이 되는 감각을 경험한다
생일 관점 _생일 파티가 불편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양인의 특징을 읽다가 가장 먼저 공감한 게 생일 파티 이야기였거든요. 저도 어느 순간부터 제 생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괜히 기다리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일 역시 수많은 하루 중 하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생일 당일에 정말 바라는 건 그냥 잘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다른 사람 생일에는 기꺼이 축하하러 간다는 점입니다. 이게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논리가 있습니다. 저 사람이 축하를 좋아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기쁘게 가는 것이고, 저 자신은 그런 이벤트에서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하니 굳이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물도 비슷합니다. 제가 선물을 받아도 크게 들뜨지 않다 보니, 다른 사람이 선물을 받으면 기뻐한다는 사실을 꽤 오랫동안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냉정한 사람인 건 아닙니다. 만나면 따뜻하게 대하는데, 선물이라는 형식 자체에 제가 무게를 두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40년 가까이 임상 경험을 쌓은 라미 카민스키 박사도 수많은 환자를 만나오면서 정작 본인은 어떤 소속감도, 연결감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출처: 『이양인』, 라미 카민스키 저). 그 감각이 외로움이나 고독과는 다르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외로움(loneliness)은 타인이 없어서 힘든 상태이고, 고독(solitude)은 타인 없이 혼자 있는 상태인데, 이양인이 경험하는 건 그것과 또 다릅니다. 타인의 존재가 굳이 중요하지 않고, 혼자 있는 순간에 오히려 주도권을 가진 주인공이 되는 감각입니다.
최적 지점_"어중간하다"는 말이 틀린 이유
주변에서 가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는 왜 이렇게 어중간한 인싸야?" 그 말이 좀 불편했는데, 이제는 제가 왜 불편했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건 어중간한 게 아니라 제3의 영역에 있는 것이었고, 한국어에 그걸 표현하는 말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언어가 없으면 개념도 보이지 않습니다. 내향과 외향 사이의 '중간'이 아니라, 그 두 범주와는 아예 다른 좌표에 있는 유형인데 표현할 단어가 없으니 그냥 '사이 어딘가'로 뭉뚱그려졌던 겁니다. 이양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 한국어 조어이기도 합니다. 외향이라는 고향도, 내향이라는 고향도 없다는 의미에서 '실향민'에 빗댄 표현도 있을 정도입니다.
모더레이터(moderator)라는 조직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여기서 모더레이터란 외향인과 내향인 사이에서 수위를 조절하고 두 그룹이 각자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외향인은 문제 해결에 강하고, 내향인은 분석과 집중에 강합니다. 그런데 이 두 기능을 직접 조화시키려 하면 의외로 효과가 없고, 이양인이 그 사이에 있을 때 자연스럽게 균형이 잡힙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설명이 꽤 맞았습니다. 팀 안에서 저는 앞장서지도 않고 뒤에 빠지지도 않는 위치에 자연스럽게 있었고, 그게 팀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실제로 기여했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 당시엔 그냥 제 성격이 그렇구나 싶었는데, 이제 보면 이양인의 기질이 발휘된 순간이었습니다.
자기 이해_나를 알면 삶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제가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자유'였습니다. 오랫동안 설명하기 어렵던 제 행동 패턴이 드디어 이름을 얻은 느낌이랄까요? 모임에는 성실하게 나가면서도 임원직은 한 번도 맡지 않은 것, 동창회는 참석하지만 동창회장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것, 이런 것들이 뭔가 결여된 사람의 증거가 아니라는 확인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기효능감이란 자신이 특정 상황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의 믿음을 뜻하며, 이것이 높을수록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이양인의 경우, 역할 기반의 범주화 방식 덕분에 "내가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명확히 알 때 자기효능감이 가장 높아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느낍니다. 생일 하루에 특별함을 몰아넣기보다, 평범한 오늘을 충분히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제게는 더 맞는 방식이었고, 그게 이양인의 기질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특별한 날만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오늘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 그게 제가 결론에 도달한 방식입니다.
이양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관계도 달라집니다. 이분법적으로 "너 내 편이야? 저 사람 편이야?"를 요구하는 언행이 이양인에게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알게 되니, 그런 상황 자체를 다르게 읽어내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 힘이 삶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준 건 사실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양인이랑 양향인(ambivert)은 같은 건가요?
A.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다릅니다. 양향인은 내향과 외향의 특성을 골고루 가진 중간형으로 설명되는 반면, 이양인(오트로버트)은 내향·외향이라는 특성 기반의 범주화 자체에서 벗어나 역할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별도의 유형입니다. 성격의 평균값이 아니라 제3의 좌표에 있다고 이해하면 더 정확합니다.
Q. 이양인 테스트 기준 점수는 어떻게 되나요?
A. 『이양인』 책에 수록된 자가 진단 테스트를 기준으로 하면 188점이 경계 점수입니다. 이 점수 전후에 위치한다면 이양인의 기질을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점수 자체보다 개별 문항에 얼마나 공감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됩니다.
Q. 이양인은 직장 생활이 더 힘든가요?
A. 조직의 가치만을 위해 일하거나 특정 역할을 강제로 부여받는 상황에서는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양인 특유의 모더레이터 기질, 즉 다양한 구성원 사이에서 수위를 조절하는 능력은 현대 조직에서 오히려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기질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찾는 것이 핵심입니다.
Q. 주변에 이양인이 있으면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A. 가장 중요한 것은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넌 내 편이야, 아니야?" 같은 방식의 질문은 이양인에게 특히 피로합니다. 그들이 모임에 잘 나오면서도 중심 역할을 맡지 않는 것을 어중간함이나 무책임으로 읽지 말고, 그것이 그 사람의 최적 지점임을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훨씬 편안해집니다.
결론
저는 이양인이라는 개념을 알고 나서 오랫동안 설명하지 못했던 제 모습에 이름을 붙여줄 수 있었습니다. 어중간한 게 아니라 최적의 지점이 있는 것이었고, 그 지점을 찾는 것이 어떤 유형에 속하려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1년에 한 번 생일을 특별하게 보내는 것도, 매일의 평범한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모두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보다 어느 쪽이 자신에게 진짜인지를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양인이라는 개념이 낯선 분들께는 아래 참고 자료를 통해 한번 직접 들어보시길 권합니다.